안녕? 지금 이 글 앞에 있는 독자는 ‘누구길래 반말로 시작하지?’라며 황당해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 우리는 반말에 민감하다. 우리나라에서 초면 사이에 반말과 존댓말은 인간의 품성을 규정짓는 중요한 척도이다. 달리한 언어에 따라 첫인상이 결정되고 그 첫인상은 앞으로의 관계가 좌우된다. 초면이면 더욱이 예의를 차리면서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엔 존댓말이 대표적이다. 나이에 따른 신분, 혹은 사회적 지위, 나이에 상관없는 직급에 따라 암묵적으로 반말 주체와 존댓말 주체가 결정된다. 그래서인지 주위만 둘러봐도 나이 드신 어른이 젊은 사람에게 반말하는 모습이 그리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젊은 사람이 자기보다 훨씬 어른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반말하는 모습을 보면 예의 없어 보이고 눈살이 찌푸려진다. 대학에서도 교수가 학생에게 반말로 수업하는 것에 큰 이상함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당연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왜인지 모르게 기분 나쁘지 않다. 나보다 훨씬 어른이라서 그런가. 하지만 학생이 교수에게 반말로 대응하면 듣는이 모두가 충격을 받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유독 수직적 위계질서가 뚜렷하여 반말이나 존댓말을 해야 하는 관계가 분명하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또래 친구에겐 무조건 반말을 하는 사이가 된다. 또한 부모님을 비롯하여 조부모, 삼촌, 이모 등 실질적으로 윗사람이지만 이들에겐 반말이 허용되기도 한다. 이런 점을 포함하면 반말이나 존댓말을 해야 하는 관계는 분명하면서도 애매하다.
평소 뉴스에도 ‘반말이 기분 나빠서 폭행’, ‘반말 갑질’, ‘반말 지적’ 등 반말에 관한 논란들이 보도된다. 반말 사용에 있어 누군 사회적 허용이고, 누군 사회의 낙인이 된다면 우리는 무슨 말로 대화를 해야 문제가 없을까 고찰해보아야 한다. 지나가는 한국인 아무나 붙잡아서 누군가의 반말로 인해서 기분 나쁜 적이 있었냐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쌍방향 허용 없이 일방적 반말은 잘못된 것으로 치우친다. 아는 사이가 아닌데 반말하면 괜히 자신이 그보다 아랫사람이 된 것 같고, 그가 자신을 무시하는 행위로 간주할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하다. 우리 사회는 초면 사이 혹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존댓말로 대하는 것이 예의라며 관습 중에 기본 관습이다.
언제부터인 건지. 아주 먼 옛날로 거슬러 가보면 일국의 지존이 있을 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하늘 아래 임금보다 높은 사람은 없었으며 임금 아랫사람이 감히 임금께 말을 짧게 아뢸 수가 있었을까. 이로부터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다. 역시 시대는 바뀌어도 관습이 바뀌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변함에 따라 옛것이 사라지고 바뀐다 한들 우리는 이미 일상에 반말과 존댓말 사용 경우를 조건 반사적으로 구분하여 살아간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반말 대신 일상어, 존댓말 대신 격식체를 사용하여 반말과 존댓말의 개념을 없애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되면 무슨 기준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우위를 정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반말과 존댓말 문화는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일단 우리는 현재 이 사회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독자 역시 지금껏 나는 반말과 존댓말이 주변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잘 사용했는지 또 나에게 무례하게 반말했던 상대방의 모습이 다른 곳에서의 내 모습이 아닐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자신과 상대의 위치와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디에선가 누군가에게 윗사람이기도 하며 아랫사람이기도 하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우리나라에서 자신이 존중받고 싶다면 먼저 상대에게 존댓말을 하며 존중을 표한다. 말이야 본능적으로 내뱉어지기도 하지만, 감정 과잉의 사회를 살아가는 자신과 상대를 위해서 첫마디를 신중하게 내뱉어야 한다. 이렇게 모두가 존중받는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양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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